[조호진 시인의 소년희망편지] 2022년 마지막 편지
▲제가 산타 할아버지가 되어 미혼모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지난 8월에 입대한
이등병 니체(가명·21세)가
성탄절 후원금을 보내왔습니다.
미혼모와 위기 청소년들에게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사주라면서 이런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어느 날, 일하느라 지쳐 살던 때 수녀님께서 주셨던 10만 원이 저에게는 큰 감사였었어요. 그 감사함이 가끔씩 생각나고는 했었지만 감사함을 나눌 기회가 없었는데 마침 크리스마스를 맞아서 고생하며 사는 지친 영혼(미혼모와 위기 청소년)들이 케이크라도 먹길 바라는 마음으로 (후원금을) 보냈어요.”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이사장 임진성)의 수호천사로 어린 미혼모와 위기 청소년들을 묵묵히 후원해주시면서 서울성모병원 의료진으로 일하시는 ‘채송화’(별칭) 수녀님께서는 그동안 여러 차례 후원금을 보내주셨고 그 후원금 가운데 10만 원이, 막노동하며 공부하던 니체에게 전달됐습니다. 후원자였던 수녀님과 전달자였던 어게인은 잊고 지냈으나 주경야독에 지친 ‘고학생’(苦學生) 니체는 그 후원금을 가슴에 크게 새겼던 것입니다. 그냥 10만 원이 아니라 삶의 의지를 다지게 한 도움이었기에 누군가에게라도 대신 갚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랑의 빛은 세속의 빛과 달리 채무 관계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사채는 고리대금의 이자와 악독한 추심이 발생하지만, 사랑의 빚은 이자도 없고 반드시 갚지 않아도 되는 제약 없는 부채입니다. 사랑을 나눠준 이들 또한 사랑의 빚진 자이기에 빚을 받을 생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랑의 빚진 자들은 그 빚을 갚으려 애씁니다. 내가 받은 사랑을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에게 갚으려고 하는 특성을 가진 사랑의 빛은 낮고 그늘진 곳으로 향합니다. 사랑의 빚이 빛을 발하면서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이웃들에게 희망의 등불을 비추어주면서 살게 합니다.
그리하여. 수녀님에게 받은 사랑의 빚을 언젠가 갚고 싶었던 니체는 그 빚을 갚을 때를 찾았는데 하필이면 그때가 벼랑 끝이었던 것입니다. 고립되어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 같은 고립무원(孤立無援)의 두려움에 처하면서 공황장애가 발생했고, 군 당국은 이등병 니체가 부모 형제로부터 버림받고 학대까지 당하는 등의 불우한 성장 과정과 가족 상황을 파악하면서 관심 사병으로 분류한 것입니다. 그래서 군 병원에 입원하여 심사 중인 이등병 니체가 이런 상황에서 사랑의 빚을 갚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들을 어찌 외면하실 수 있을까요.
나쁜 부모에게 당한 학대와 괴롭힘
나쁜 형들에게 당한 폭력의 기억이
훈련 과정에서 되살아나면서 공황장애가 발생했습니다.
관심 사병으로 분류되어 심사받고 있는 이등병 니체를 위하여
기도해달라고 부탁드렸더니 니체가 이런 응답을 보내 왔습니다.
“요즘 기도를 많이 드리니 정말 하나님께서 많이 도와주시는 것 같아요. 그러니 제 걱정은 안 하셔도 괜찮아요. 병세도 많이 나아졌고 살찐 거 말고는 다 괜찮은 것 같아요.”
그가 벼랑 끝 위기에 처했을지라도, 그가 고립무원의 두려움에 휩싸일지라도, 그가 죽음의 병고에 쫓길지라도 영안(靈眼)이 열려서 사랑의 빛에 눈을 뜬다면 그는 살 것입니다. 자신보다 더 고통스러운 이웃을 건지기 위해 손을 잡아준다면 그는 불행과 고통에서 빠져나와 희망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이등병 니체를 위해 기도해주신 여러분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대 덕분이었습니다.
▲미혼모 아이들에게 따뜻한 옷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었습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아쉬운 언덕에서
그대에게, 진정으로 감사 인사를 드리는 것은
막막하고 깜깜한 처지의 아이들,
어린 미혼모와 위기 청소년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사랑의 빛이 되어 한 생명을 살려주셨습니다.
2022년, 올해도 그대 덕분이었습니다.
보잘 것 없이 작은 자에게 베풀어 주신 그대의 작은 사랑,
부끄러워 손사래 치시는 그 사랑으로 인해 한 생명이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으므로 가는 해는 가게하고 오는 해는 오게 하여
2023년, 새해에도 그대와 함께 희망의 등불을 켜면 좋겠습니다.
■추신, 훈훈한 소식
▲소년희망공장에서 일하는 청소년들에게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선물했습니다.
행복한 산타 할아버지가 되어 미혼모 아이들과 소년희망공장 청소년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눠주었습니다. 집집을 찾아가면 아이들이 제 품에 안겼는데 그냥 안기는 것이 아니라 포근히 안겼습니다.
빨간 옷을 입은 낯선 할아버지를 보면 왠지 반갑고 무서워서 화들짝 울거나 심지어 무서워서 꽁지를 빼는 아이들도 있는데 원미동 할머니가 키우는 윤호(2세)와 공장 다니는 미혼모가 키우는 다솔이(4세)는 산타 할아버지 품에 포근히 안기며 재롱을 피웠습니다. 특히, 다솔이는 크리스마스 선물인 동화책 전집이 맘에 드는지 좋아했습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저인 줄 알았던 것 같습니다. 들켜서 부끄럽다고 도망갈지도 모르니 그냥 모른 척해준 것 같습니다. 어찌 됐든, 어설픈 산타 할아버지 품에 포근히 안겼던 그 따뜻함이 잊히질 않습니다.
탈북 미혼모 향이(24세)의 8개월 된 아기 순남이는 산타 할아버지가 뭔지도 모르고 안겼다가 저의 품이 불편했는지 잠깐 칭얼거리다가 엄마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린 나이에 연년생을 낳은 후, 산후우울증과 양육의 어려움으로 인해 힘겨워하는 향이를 두고 돌아서는 발길이 무거웠습니다. 부산과 천안에 사는 보육원 출신 미혼부 현우(25세)와 숙희(30세)에겐 아이들 옷을 인터넷에서 고르게 했고, 고른 옷들을 주문해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내주었습니다. 보육원 출신 미혼부 재호(24세)가 혼자 키우는 연주(2세)에게도 똑같이 선물했습니다.
소년희망공장 아이들에게는 백화점에서 구입한 고급 케이크를 선물로 나누어주었습니다. 미혼모 가정과 소년희망공장 아이들에게 선물할 케이크를 선정할 때 반사회적 기업과 반노동자 기업의 제품은 배제했습니다. 그래서 파리바게뜨 제품은 배제했습니다. 생명을 경시한 기업이 인간애를 발휘할 수 있을까요.
끝으로, 훈훈한 소식을 전합니다. 보육원 출신 미혼모 숙희의 큰딸 솜이(9세)가 피아노 콩쿠르대회에 출전해서 대상을 받았답니다. 아빠가 떠난 뒤, 소아 우울증을 앓던 솜이가 여러분의 사랑과 기도 덕분에 이렇게 멋진 소녀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인천가정법원이 어게인에 위탁했던 보호소년 지우(중3)가 용산철도고등학교에 합격했습니다. 엄마가 없어서 할머니 품에서 자란 지우의 희망인 철도고 진학을 위해 올 한해 심리 상담과 진학지도에 정성을 쏟은 결과 이렇게 기쁜 소식이 전하게 되어 기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2023년, 새해 복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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