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감사편지]
“할머니, 나는 왜 엄마가 없어?”
어린이집에 갔다 온 윤호(4세)가
원미동 할머니에게 갑자기 물었습니다.
그날,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시무룩한 윤호를 보면서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엄마 보고 싶어? 엄마에게 데려다줄까?”
“아니, 괜찮아. 나는 엄마 할머니만 있으면 돼!”
윤호는 원미동 할머니를 ‘엄마 할머니’라고 부릅니다.
어린이집 친구들은 엄마가 있는데, 엄마가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엄마가 데리러 오는데, 자기만 할머니와 단둘이서 살고 있으니 이상하고, 허전하고, 쓸쓸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왜 엄마가 없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어린 짐승도 자신을 낳아준 모성을 그리워합니다. 하물며 사람의 아들로 태어난 ‘윤호’가 엄마를 왜 그리워하지 않겠습니까. 그러함에도 윤호는 할머니가 “엄마에게 데려다줄까?”라고 하자 바로 거부했습니다. 그것은 ‘엄마’라는 사람이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윤호가 태어난 지 1년이 되기 하루 전이었습니다. 첫 생일을 하루 앞둔 2021년 3월의 어느 날, 윤호의 엄마였던 미혼모 ‘은희’는 첫째 ‘혜빈’이만 데리고 가출했습니다. 그리고는 딴 남자와 동거한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원미동 할머니는 간혹, 은희의 나쁜 소식을 들려주었는데 최근에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은희가 딴 남자 사이에서 아들과 딸을 더 낳았다는 소식을 저에게 전하면서 ‘윤호’ 누나인 ‘혜빈’이의 신변을 걱정했습니다.
딴 남자라는 사내는 소년원 출신이라고 했습니다. ‘은희’와 동거 중에도 무슨 범죄를 저질러서 감옥에 갔다고 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혜빈’이가 잘 지낼 수 있을까? 저 역시 원미동 할머니처럼 ‘혜빈’이에 대한 아동학대 등이 염려돼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와 상의했으나 아동학대 증거도 없이 개입하기도 어렵고, 막상 사건이 발생한다고 해도 아동을 보호할 시설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는 말에 애만 태웠습니다.
“(자식과 손주 때문에) 너무 속상해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을 나섰는데 ‘윤호’가 졸졸 따라오면서 ‘할머니, 가지 마! 가지 마!’라고 하면서 우는데 참….”
원미동 할머니의 생은 가시고기 인생입니다. 할머니에겐 자식 셋이 있는데 이리저리 뜯어가는 자식만 셋이라고 했습니다. 자식과 손주에게 다 뜯기고 앙상한 뼈만 남았다고 했습니다. 큰아들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미혼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미혼모였던 며느리가 손주 ‘영수’(윤호 아빠)를 버리고 달아나는 바람에 엄마가 되어 손주를 키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눈물과 한숨으로 키운 손주 ‘영수’가 자기 아빠처럼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또다시 미혼부가 되면서 증손주를 떠맡겼습니다. 손주만 떠넘긴 것이 아니라 카드빚과 사채를 떠넘기고, 청소부 생활로 번 돈을 뜯어가고, 빚더미로 몰아넣고… 그래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는데 분리 공포증에 시달리는 손주의 울부짖음이 발목을 잡아서 떠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윤호 아빠 영수는 은희가 가출한 뒤 어떤 여자와 동거하다 헤어졌고, 다니던 공장도 그만두고는 떠돌이 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영수는 자신의 아빠처럼 자식에 대한 책임을 전혀 지지 않으면서도 ‘윤호’에 대한 수당은 꼬박 챙겨 갑니다. 윤호가 이런 아빠에게 안길 리가 없습니다. 윤호에게 유일한 보호자는 ‘원미동 할머니’입니다. 원미동 할머니는 윤호를 보육원에 보내라는 가족의 성화에도 “내 핏줄을 어떻게 고아원에 보내겠냐”면서 “죽어도 같이 죽겠다”면서 윤호를 자신의 목숨처럼 지키고 있습니다.
“할머니, 빵 할아버지 왔어!”
윤호는 저를 ‘빵 할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저는 일주일에 한 번, 윤호가 좋아하는 케이크와 빵을 챙겨서 원미동 할머니 집을 방문합니다. 그러면, 문 앞에서 저를 아니, 빵을 기다리던 윤호가 손을 흔들며 달려옵니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면서 틈을 내주지 않는 윤호가 빵을 가져온 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요. 외롭고 쓸쓸한 아이를 즐겁게 해주는 일은 복된 일입니다.
저의 첫 손녀는 생일 놀이를 좋아합니다. 특히,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 뒤에 촛불을 끄는 놀이를 좋아합니다. 자신의 생일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삼촌과 이모 등의 생일에도 마치 자신의 생일인 것처럼 주인공이 되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촛불을 끄면서 너무 행복해합니다.
제 손녀뿐이겠습니까. 세상의 아이들은 생일을 좋아합니다. 생명으로 태어나고, 축하받고, 사랑받는다는 것은 기쁜 일이니까요. 그런데, 윤호는 첫 생일 전날에 엄마에게 버림받았습니다. 세상의 아이들이 첫 생일의 축복과 축하를 받으면서 출생의 기쁨을 누릴 때, 엄마에게 버림받은 윤호는 우주를 떠도는 미아가 된 것입니다. 버림받은 아이들에게 생일은 축복의 날이 아니라 아픔의 날입니다. 자신을 낳고 자신을 버린 엄마가 원망스러운 날, 왜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이 고통을 겪게 하느냐! 라고 울부짖는 날이 생일인 것입니다.
윤호에게 케이크와 빵을 주고 온 날은 마음이 뿌듯하면서도 미안합니다. 저에겐 윤호보다 두 달 먼저 태어난 첫 손녀가 있습니다. 축복받으며 태어난 첫 손녀에게 무엇이든 아끼지 않고 선물합니다. 조부모뿐 아니라 엄마와 아빠, 삼촌과 고모, 이모를 비롯한 일가친지와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는 손녀를 보면 윤호에게 미안합니다. 윤호는 부모를 선택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나쁜 부모로 인한 책임을 어린 생명이 다 져야 하다니요. 버림받은 아이를 책임지지 않는 이 세상이 야속합니다.
“제가 죽으면 윤호는 어떻게 될까요?”
원미동 할머니는 무슨 일이 생기면 저에게 연락합니다. 보일러가 터졌을 때도, 윤호 발달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몸이 아팠을 때도, 자식들과 손주로 인해 속상했을 때도…. 미혼부였던 ‘영호’가 소년원에 들어가고 미혼모였던 ‘은희’ 혼자서 아기 ‘혜빈’이를 키워야 하는 딱한 상황에서 분유 등을 지원하며 시작된 5년의 인연 속에서 쌓인 속 깊은 정과 믿음이 작용했겠으나 무엇보다 누구 하나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으니 저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원미동 할머니의 무거운 고민이 제 뇌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원미동 할머니가
죽으면 윤호는 어떻게 될까?
※ 등장인물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10월 후원인 명단]
저는 어린 시절에
버림받은 적이 있습니다.
‘엄마가 돈 벌어서 돌아올게!’
가난과 불화에 지친 어머니는 새벽 무렵,
잠든 제 귀속에 이런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비몽사몽 간에 깨어난 저는
어머니가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그 길로 어머니를 목매도록 부르짖으며
버스 정류장이 있는 오목교로 뛰어갔습니다.
그 기억이 아직도 선연합니다.
그 아픔이 아직도 남았습니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이는
미아가 되어 우주를 떠돕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힘이 없습니다.
윤호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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